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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4. 14世 〉30. <부정공>충의사휘진로봉안문(忠義士諱晋老奉安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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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부정공>진사공휘유사묘표(進士公諱維四墓表)
進士公諱維四墓表 淳昌趙氏自麗朝世爲名族節義忠孝之士相望而出高麗檢校門下侍中諱璋爲鼻祖至曾孫有諱元吉定策立勳封府院君諡忠獻享武夷祠生諱瑜號虔谷文科副正麗社既屋入杜門洞我朝徵以漢城尹不起世宗朝旌其忠孝特書以前朝職名享謙川祠於公爲九世祖也曾祖諱愿從仕郎祖諱暻生員考諱時述進士妣南陽洪氏佐郎宗海之女公諱維四字子張生於仁祖癸酉一六三三狀貌秀異入孝出弟治家有度十歲遭外艱執禮如老成人才質超卓自知劬書經書諸史無不通曉比壯與兄維馨弟維元連袂入漢城應式年試而登第其後伯季兩公歸鄉公則獨抱大志連遊泮宮偲偲勤工未成鵠望擇地畿甸而奠居即始興郡君子面也子孫世居焉自是守志林泉躬耕敎子鄰近學徒聞風坌集負笈請學雖不以師道自處諄諄敎導蘊畜德懿不求人知人皆矜式焉卒於肅宗癸酉一六九三年十一月一日距其生仁祖癸酉壽爲六十一葬于果川西面飛山酉坐原配豊山沈氏監察詹之女後公三年而生忌正月十日祔公墓有一南弼殷僉中樞孫曰耘畦曾孫曰之大之聖之德餘不盡錄 嗚呼以公純美之資蘊抱奇業必有可觀而竟坎壈而終固爲慨歎也後孫將竪阡表請余爲文盖以忝在同根不能終辭略述梗槩如右後之人庶有以攷焉 檀紀四三二二年己巳正月 日 傍裔 東貴 謹撰 진사공휘유사묘표(進士公諱維四墓表) 淳昌趙氏는 麗鮮兩朝에서 聲望이 있는 名族으로 節義와 忠孝를 行한 선비를 輩出하셨다. 高麗檢校門下侍中諱璋을 始祖로 모시고 曾孫諱元吉은 恭讓王을 策立한 功으로 府院君을 封했으며 시호는 忠獻이요 武夷祠에 配享하였다. 生諱瑜의 號는 虔谷이요 文科에 올라 벼슬은 副正인데 高麗가 亡하니 杜門洞에 들어가 罔僕義를 지키고 李朝에서 漢城尹으로써 불러도 不就하니 世宗朝에서 그 忠孝를 嘉尚하여 특별히 前朝職名으로 旌褒하고 謙川祠에 奉享하니 公의 九世祖이시다. 曾祖諱愿은 從仕郞이요 祖諱暻은 生員이며 考諱時述은 進士신데 妣는 南陽洪氏佐郎宗海의 따님이시다. 公의 諱는 維四요 字는 子張이며 仁祖癸酉(一六三三)년에 낳고 狀貌가 秀異하여 入孝出弟하고 治家有度하며 十歲에 外艱(父母喪)을 當하여도 老成人같이 執禮하고 才質이 뛰어나 文學을 힘써 經傳과 史記를 두루 渉獵하였으며 壯年에 兄維馨 弟維元과 함께 漢城에 올라가 進士試에 應하여 及第하였다. 其後에 伯季二公은 歸鄉하고 公은 홀로 大志를 품고 계속 太學에 남아 篤工했으나 所望을 이루지 못하고 漢城近處에 땅을 가려 定着하니 곧 始興郡 君子面이요 子孫이 世居하다. 이후로 草野에 숨어 志操를 지키며 躬耕敎子하니 近方에 사는 學徒들이 風聲을 듣고 坌集하여 배우기를 請했다. 비록 師道로써 自處하지 않았으나 諄諄이 이끌어 敎導하며 德行을 닦고 聲譽를 不求하니 鄉坊에 稱頌이 藉藉하였다. 仁祖癸酉에 낳아 肅宗癸酉(一六九三)十一月一日에 享年 六十一歲로 吿終하니 果川西面飛山酉坐原에 安葬하였다. 配豊山沈氏는 監察詹의 따님으로 公보다 三年뒤에 出生하여 忌는 正月十日인데 公墓에 祔葬하였다. 一男弼殷은 벼슬이 僉中樞요 孫은 耘畦며 曾孫은 之大之聖之德이요 以下는 다 기록 아니한다. 아! 公의 純美한 資質과 深奧한 抱負로 반드시 顯揚後世할 것인데 마침내 失志沒世하니 甚爲痛恨하도다. 後孫이 장차 墓道에 石儀를 갖추고저 내게 請文하니 同根의 義誼로 敢히 固辭하지 못하고 대략 右와 같이 叙述하며 知德者의 考察을 바람. 檀紀四三二二年己巳正月 日 傍裔 東貴 謹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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